옛날, 서산 용현리에 한 젊은 나무꾼이 살았어. 이 청년에겐 하나뿐인 홀어머니가 있었는데 효심이 깊은 청년은
매일같이 약초를 캐거나 나무를 팔아 어머니를 지극정성으로 봉양했어.
하지만 점차 혼기가 늦어지자 어머니는 나를 봉양할 생각보다 참한 처자나 데리고 오라며 청년을 타박했어. 청년도
어머니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당장 겨울나기도 힘든 와중에 다른 것은 생각할 겨를이 없었지.
그러던 어느날이었어.
늦은 밤, 어김없이 약방에 팔 약초를 캐던 나무꾼은 심란한 마음에 평소처럼 일을 하지 못해.
장가. 장가. 장가.
언제 돌아가실지도 모르는 어머니의 마지막 소원인데 어떻게하면 좋을지 막막했어.
그런 와중에 전날 무리하게 나무를 했는지 잠까지 쏟아져. 청년은 한숨 속에 잠깐만 자고 나오자 싶어
근처 폐가로 이동해.
그렇게 한동안 폐가에서 잠이 든 후였어. 갑자기 바깥이 환해지더니 정체모를 소리가 들려오는 것 아니겠어?
“도련님, 이리 좀 와 보세요.”
“이리 좀 와 보시라니까요!”
청년은 눈을 떴고 얼어붙은 듯 그 자리에 가만히 있었어.
그 순간.
갑자기 문이 열리더니 아리따운 처자가 들어오는 것 아니겠어?
처자는 긴 머리에 붉은 댕기를 늘이고서 슬픈 얼굴을 하고 있었어.
"다, 당신은 누구요!"
청년은 벌떡 일어나 뒷걸음쳤고 처자는 돌연 슬픈 얼굴에 미소를 띄우며 말없이 청년을 바라볼 뿐이었어.
그러자 청년은 놀란 마음을 잠시 제쳐두고 침착히 물었어.
"혹 이곳의 주인인거요?"
처자는 말이 없었어.
"아니면 산에서 무슨 봉변을 당하였소?"
처자는 또 말이 없었어. 이쯤되자 청년은 인상을 찌푸렸지.
"답답하구려. 말 좀 해보오!"
그러자 한동안 말이 없던 처자의 입이 이제야 열려.
"실은 제게 딱한 사정이 하나 있는데 들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청년은 당황스러웠지만 그래도 티를 내지 않고 차분히 답했어.
"그것이 무엇이오?"
"지금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뭐요? 어째서."
"그 이유는 내일 말씀드리겠습니다. 허니 내일 밤 보름달이 둥글게 이 산의 꼭대기에 떠오를 때 도령께서 꼭
이 산 꼭대기로 와주십시오. 할 수 있으시겠습니까?"
청년은 꺼림칙했지만 처자의 간절한 눈빛을 외면할 수 없어 그러겠노라 했어. 그러자 처자는
밝은 미소를 한 번 짓고는 홀연히 방문을 나갔지.
여인이 사라지고 청년은 정신이 몽롱했어. 내가 방금 꿈을 꾼 것인가? 그러나 꿈이었다기엔 방금 나눈 대화와
두 눈으로 본 여인의 얼굴이 너무도 생생했지.
백옥같은 피부에 그려진 까만 이목구비. 그리고 흐트러짐 하나 없던 단정한 자태.
여인의 모습을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청년의 가슴은 미칠듯이 뛰기 시작했어. 그리고 얼른 다음날이 되기를
자신도 모르게 기다리게 됐지.
그리고 다음날 밤이었어.
그렇게 보름달이 산 꼭대기에 걸쳐진 밤, 청년은 여인과의 약속대로 산 꼭대기에서 여인을 기다렸지. 그런데 한 시간, 두 시간이 지나도
여인이 오지않자 청년은 자신이 바람을 맞은 줄 알고 그만 돌아가려고 해.
그런데.
막 떠나려는 순간 여인은 와주었고 잠깐의 정적이 흘렀어.
여인은 말없이 총각을 바라볼 뿐이었고 총각은 머뭇거리다 용기를 내 말해.
"저, 어제는 어찌 그리 슬픈 얼굴을 하고 있었소? 그 딱한 사정이라는 것은 대체 무엇이고."
그러자 여인은 살짝 미소짓더니 다시 정색하며 말해.
"실은 제가 거짓말을 했습니다."
"거짓말이라니요?"
"제가 도령을 속였단 말입니다."
"속이다니요?"
"실은."
한순간 여우 괴물로 변한 처자의 모습을 보자 청년은 그 자리에서 기함할 수 밖에 없었어.
하지만 여우는 되려 그 모습을 비웃듯 말하지.
"나는 사실 이 산에 사는 여우요. 내 이곳 산신령에게 내가 살 좋은 명당을 하나 달라 했더니, 네가 사람으로
변하여 착하고 용감한 청년을 이곳에 데리고 온다면 명당을 준다하였소. 그래서 내 당신을 이곳까지 유인해 온 것이오."
말을 마친 여우는 청년을 등지고 뒤돌아갔어. 그런데 여우가 멀어질수록 청년은 점점 분노하게 돼.
감히 금수따위에게 이런 농락을 당하다니 너무 분하고 억울한거야.
눈이 돌아간 청년은 멀어져가는 여우를 빨리 뒤쫓았어. 그리곤 이 요망한 여우야! 내 당장 너를 찢어죽이겠다!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여우는 잡힐 듯 말듯 잽싸게 도망다녔고 청년은 그 뒤를 계속 뒤쫓았어. 그렇게 얼마나 실랑이를 했을까.
마침내 총각은 겨우 여우의 치맛자락을 붙잡았어!
하지만 그 순간, 하늘에서 번개와 천둥이 치더니 그 여우는 숲속으로 사라지고,
청년은 벼락을 맞고 그 자리에 숨지고 말아.
그런데 청년이 죽는 순간 청년의 몸은 바위로 변했고 여우의 치맛자락을 잡으려고 구부정한 모습 그대로 바위가 되었대.
이후 사람들은 이 바위를 사람바위라 불렀고(人바위)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예쁜 여자는 요사스러우니 조심하라는 훈계를 했다고 해.
만일 청년이 조금만 경계를 가지고 조심을 했으면 어땠을까? 요즘으로 치면 어플에서 얼굴만 보고 마음에 든 여자를 만나러가는데
몰래 숨어있던 조폭이 뒤통수 가격하는 이야기가 되겠지.
우리도 모쪼록 외적만 보지말고 내적까지 볼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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